2009년 03월 07일
無
無 / 세차게 부는 바람은 나무에 올라가 가지를 흔들어 놓고 시들해진 틈을 타서 산으로 향하는 게 빛 보다 빠르다, 거침없이 숲을 훝터 비집고 빠져나와 바위에 부딪혀 제 몸을 산산조각 낸다, 마구 휘돌아 부서지는 바람은 다시 몰려서 들판을 지나고 강바람 우군과 짝짓기하여 더욱 거센 힘으로 신작로를 가로질러 도심빌딩 유리창을 마구 할퀴었다. 바람은 세월 소리를 듣고 미친 듯 질주할 뿐 고층 아파트나 언덕배기 초가삼간인들 타협이란 말은 전혀 소용없고 용서는 모기장에서 건져 올린 물 같다, 막바지에 다다라 양지바른 토담 모퉁이에 털썩 주저앉아 따스한 햇볕에 눈을 감는다, 너무 많이 달려온 탓도 있지만 육신을 투과하고 영혼을 훔쳐먹은 채 흘러가버린 과거 경험을 쉬이 삭힐 수 없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사라진 흔적을 희미하게 기억하여도 남은 것은 먼지 하나 없다. |
# by | 2009/03/07 14:13 | 詩와 수필 | 트랙백 | 덧글(0)



